선수, 감독 박세리
김준동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매일경제신문, 7월 26일자
해마다 7월 중순, 대한상공회의소는 경제인들의 힐링과 통찰을 주제로 여름포럼을 개최한다. 44회째를 맞이한 올해 포럼에는 수백 명의 경제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세계적 석학과 기업인 그리고 경제부처 수장들이 매일 열띤 강연을 펼쳤다. 강연자들은 번뜩이는 재치로 청중에게 웃음을 안기기도, 또 깊은 통찰을 주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연사는 박세리 한국여자골프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다. 포럼의 마지막 강연자로 나선 박 감독은 선수 시절 지녔던 골프정신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보여주고 싶은 리더십 철학을 주제로 강연을 이어갔다.
박 감독은 한국여자골프의 선구자였다. 한국인으로선 거의 처음으로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로 진출했고, 25회 우승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박세리' 하면 많은 사람이 1998년 US여자오픈을 떠올린다. 그녀는 연장전에서 양말을 벗고 연못에 들어가 트러블샷을 극적으로 성공시키며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이날 강연에서 그녀는 그날의 스윙이 무모한 도전일 수 있었지만, 다음 대회들을 위해서라도 꼭 해봐야 하는 경험이었다고 떠올렸다. 그 도전을 하고 나서 본인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고 회상했다.
그녀의 리더십 철학도 청중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박 감독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여자골프대표팀 감독을 맡아 한국 선수들의 금메달을 도왔다. 소위 '언니 리더십'으로도 불리는 박 감독은 이날 본인의 위치가 감독이 아닌 선수들의 매니저가 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감독이라는 자리는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무게를 덜어주고 나눠 가져야 하는 자리라는 그녀의 말 뒤엔 청중의 박수도 터져 나왔다. 선수들에게 성적을 강조하기보다는 선수들의 부담감을 덜어주고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성적은 자연스럽게 오른다는 게 그녀의 철학이었다.
박 감독의 도전정신과 리더십 철학은 기업인들에게도 큰 의미를 준다. 세계를 무대로 뛰는 플레이어로서 우리나라의 기업 역시 도전정신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박세리와의 짧은 면담에서 한국 여자골퍼들의 우승 비결을 물었다고 한다. 박 감독은 미국 선수, 한국 선수 누구나 연습량이 많지만, 한국 여자골프가 강한 이유는 정신력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정신력에는 새로운 순간, 위기의 순간 펼치는 도전정신도 포함돼 있다.
리더로서 조직원들의 성과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닌 직원들의 상황과 부담감을 이해해주는 리더십도 고려해볼 만하다. 리더들은 현장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며 하나하나 업무 지시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보다 업무를 맡기되, 본인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직원들이 겪을 업무 스트레스를 이해하고 이를 컨트롤해주는 매니저형 리더십이 때론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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